한국팝의 사건사고 - 6. 맘보·차차차·탱고의 시대
⑥라틴 가요 열풍
탱고, 맘보, 차차차, 삼바 등의 라틴 음악은 한국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낯설기는커녕 이제 지겹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선풍을 일으킨 바 있다는 얘기다. 언제부터일까.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라틴 유행의 자락을 붙잡을 수 있다. 설운도의 ‘다 함께 차차차’(1993)를 비롯해, 발표 2년 뒤 지각 히트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1994) 등이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한다면, 신승훈의 ‘내 방식대로의 사랑’과 김부용의 ‘풍요 속의 빈곤’(1996) 등은 청년층의 추억을 환기시킬 것이다.
이 곡들은 각각 차차차, 탱고, 맘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그 뒤 룸바나 삼바를 앞세운 임현정의 ‘첫사랑’이라든가 백지영의 ‘선택’이 인기를 얻은 1999년 무렵에 이르면 라틴 음악 스타일은 여름 한철을 겨냥한 하나의 히트 옵션이자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곡들을 ‘라틴 가요’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부를 수 있든 없든, 이런 움직임이 최근의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1950년대 중후반, 지금 생각하면 아득한 옛날부터 이런 ‘가요’들이 ‘인기가요’의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당시를 풍미한 라틴 리듬은 단연 ‘맘보’였다. 두 주 전 <자유부인>을 언급하면서 이야기했던 댄스홀 열풍이 단지 무도장의 현상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음반과 방송에까지 파급을 미친 것이다.
외래 음악 스타일의 유입과정에서 반드시 수반되는 현상은 ‘나름대로 토착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맘보’가 인기가요가 되기 위해서는 ‘닐리리 맘보’가 되어야 했다. ‘닐리리 맘보’는 1950년대 중반 맘보 열풍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배경으로 전국적으로 히트했다.
이 곡만이었을까. 천만에. ‘아낙네 맘보’, ‘맘보 타령’, ‘아리랑 맘보’, ‘도라지 맘보’, ‘양산도 맘보’, ‘코리아 맘보’, ‘맘보 잠보’, ‘나포리 맘보’ 등 당시 인기가요 가운데 맘보를 곡 제목으로 내세운 곡들에 대한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맘보라는 이름이 제목에 없는 경우라도 맘보 리듬을 차용한 곡들에 대한 조사는 말할 것도 없다.
1950년대에 유행한 라틴 리듬이 맘보만은 아니었다. 차차차, 탱고 등의 댄스 리듬이 한국 가요로 만들어지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누구나 다 알만한 노래들인 ‘노래가락 차차차’, ‘비의 탱고’ 등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다.
당시 작곡가들의 참으로 왕성한 ‘외래문화 수용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시기를 더 소급할 수도 있겠지만, 현인이 ‘서울야곡’을 발표했던 1940년대 후반에는 라틴 리듬이 매우 이국적이고 희귀한 것이었고 195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일반화’, ‘대중화’되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맘보와 차차차의 ‘고향’을 따져보면 맘보는 ‘아프로쿠반’ 리듬,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리듬이다. 그렇지만 이런 차이가 당시에는 그다지 중요했던 것 같지 않다.
쿠바든 아르헨티나든 모두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온 리듬이었다. 참고로, 이 모든 리듬이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 유입되기 전에 이미 미국을 한바탕 휩쓸고 갔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하다. 그리고 맘보 대유행(mambo craze)이 세계적이었다는 점도.
1950년대 중반 라틴 열풍을 두고 ‘월드 뮤직이 일찌감치 한국에 유입되었다’고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신대륙의 잡종문화가 한반도 남단에서도 ‘매혹의 리듬’을 선보였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라틴 무드는 당분간 더 지속되었다. 또한 당시를 풍미한 악단들에 아코디언, 마림바, 마라카스, 봉고처럼 뒤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악기가 기본 편성처럼 존재했다는 사실에 의아해할 이유도 당연히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한국에서 ‘미국 대중 문화의 압도적 영향’이라는 말을 쉽게 할까. 이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선명해지게 된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민족주의의 대두라는 정치적 현실을 거치면서 이 점은 보다 또렷하게 나타난다. 다음에 하자.
이용우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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