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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15 한국팝의 사건사고 - 12. 60년대는 중창단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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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팝의 사건사고 - 12. 60년대는 중창단 전성시대

 

⑫보컬 그룹: 건전하고 화목한 자매들과 형제들

 

 

“어빙 벌린(Irving Berlin)은 “쇼 비즈니스 만한 비즈니스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들 자매의 이야기는 가장 좋은 예입니다.

 

이것은 남한의 G.I. 캠프에서 시작된 쇼 비즈니스계의 전설적 이야기입니다. 남한의 유명 음악인이었던 아버지는 전쟁 중에 죽었고, 피아노조차 구경하기 어렵던 여건에서 미망인은 딸들에게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남한에 있는 부대에서 우리의 텔레비전 쇼를 시청한 G.I.들은 이들 자매가 언젠가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백 만 명의 시청자들을 상대로 노래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이루어졌고, 쇼 비즈니스 만한 비즈니스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위의 인용문은 한국 출신의 여성 중창단의 데뷔 음반에 미국의 유명 방송인이 적은 발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발문을 쓴 사람은 팝 음악 팬이라면 모를 리 없는 에드 설리반(Ed Sullivan). 그가 진행을 맡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에드 설리반 쇼’는 1950~6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는데, 팝 음악사에서도 한 획을 그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예컨대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해 ‘음란하게’ 엉덩이를 뒤흔들며 노래한 것이나 1964년 비틀스가 출연해 소녀들의 광적인 반응 속에 연주한 것은 ‘에드 설리반 쇼’가 남긴 대표적인 장면일 뿐 아니라 20세기 로큰롤의 ‘결정적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앞서 에드 설리반이 소개한 ‘자매들’은 누구일까. 1930-40년대 대중음악계의 귀재 김해송과 명가수 이난영의 딸들인 김숙자, 김애자, 그리고 이난영의 오빠이자 작곡가인 이봉룡의 딸 이민자로 구성된 3인조 김 시스터스이다.

 

1950년대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다 미국인 흥행사의 눈에 띄어 1959년 도미한 김 시스터스는 ‘에드 설리반 쇼’에 수십 차례 출연하며 많은 미국인들의 눈과 귀를 매혹시키며 ‘그후로도 오랫동안’ 미국의 쇼 무대에서 활약했다.

 

당시 활약상은 외국 잡지와 외신을 통해 전해졌고 김 시스터스는 ‘국위를 선양한’ 가수로 모국에서도 유명세를 누렸다. 비록 몇 차례의 내한 공연과 음반 발매를 제외하면 한국에서의 활동은 거의 없었던 셈이지만 ‘한국 최초의 보컬 그룹’의 의미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앤드루 시스터스, 맥과이어 시스터스 등을 모델로 한 전형적인 여성 중창단이었으나, 멤버 모두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등 단순히 ‘노래하는 중창단’에 머물지는 않았다.

 

 

김 시스터스 이후 ‘슬픈 영화’의 정 시스터스, ‘검은 상처의 블루스’의 김치 캣츠, ‘여군 미스 리’의 이 시스터스 등 여성 보컬 그룹들이 등장해 인기를 누렸다.

 

또 에임스 브라더스, 브라더스 포 등에 영향 받은 남성 보컬 그룹들도 등장해 큰 인기를 얻었다. ‘즐거운 잔칫날’의 블루 벨스, ‘빨간 마후라’의 쟈니 브라더스, ‘꽃집의 아가씨’, ‘육군 김일병’의 봉봉 사중창단, ‘동물농장’의 아리랑 브라더스 등이 그들이다.

 

김 시스터스가 여성 보컬 그룹의 탄생을 알렸다면, 블루 벨스는 남성 보컬 그룹의 시금석에 해당하는 존재였다. 현양, 서양훈, 김천악, 박일호로 구성된 블루 벨스의 멤버들이 본래부터 보컬 그룹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각자 솔로 가수로 성공을 꿈꾸며 작곡가 손석우를 찾아온 그들은 손석우의 조언과 도움으로 최초의 남성 보컬 그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 보컬 그룹은 1960년대 초중반을 중창단의 전성시대로 수 놓았다. 가수라면 당연히 솔로 가수만을 접했던 대중들은 풍성한 화음을 자랑하는 보컬 그룹의 출현에 처음에는 낯설어 했지만 곧 뜨겁게 반응했다.

 

보컬 그룹의 음악은 ‘즐거운 잔칫날’ 같은 건전가요 스타일의 노래, ‘빨간 마후라’ 같은 대중가요 풍의 군가, ‘동물농장’ 같은 코믹한 노래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음악이 1960년대 당시 우후죽순 생겨난 민영방송의 ‘가족 지향’의 버라이어티 쇼와 베트남전 참전이란 사회 분위기에서 ‘그림이 되고 환영받았음’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1960년대에 활약한 대부분의 보컬 그룹은 사실 노래만 하는 중창단에 가까웠다. ‘송라이팅은 직업적 송라이터, 연주는 직업적 연주인, 노래는 가수’라는 전통적 분업체계에는 변동이 없었던 셈이다. 이에 균열을 가하는 다른 의미의 ‘보컬 그룹’이 등장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이용우/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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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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