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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14 한국팝의 사건사고 - 10. ‘팝 스타일’ 가요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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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팝의 사건사고 - 10. ‘팝 스타일’ 가요의 등장

 

⑩‘노오란 샤쓰 사나이’, 1960년대를 열다

 

한국 대중음악의 ‘진정한 1990년대’는 통상 1992년에 시작된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언급하는 것은 지겹지만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알아볼 1960년대의 경우는 어떨까. 1960년대 역시 한명숙이 부른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히트한 1961년이 기점이 된다는 얘기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90년대에 ‘난 알아요’가 그랬던 것처럼,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단지 상업적 ‘대박’을 터뜨린 것만은 아니었다. 한 시대의 개막을 표상하는 팡파르였던 것이다.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너무나도 새로운 곡이었다. ‘너무나도’라는 말을 꼭 붙여야 한다. 새로운 만큼, 사람들이 보인 처음 반응은 무심하거나 냉담했다.

 

반주를 주도하는 경쾌한 힐빌리(컨트리)풍의 바이올린 연주는 ‘방정맞고 해괴한 반주’란 소리를 들었다.

 

또 미8군 쇼 무대에서 활동하던 한명숙의 허스키한 보컬은 ‘은쟁반에 옥 구르는’ 한국 여가수의 전통적 보컬의 질감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목이 쉰 듯한 괴상한 목소리’란 반응도 있었다.

 

가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오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 아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 아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란 노랫말은 당시로서는 아주 직설적이고 당돌한 것이었다.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의 새로움은 곡 자체에 머물지 않았다. 이 곡이 실린 10인치 LP <손석우 멜로듸>의 음반 커버는 관례와 달리 원색적인 색채의 가수 사진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작곡가인 중년 남성의 모습을 담백한 색채로 스케치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도매상의 핀잔과 함께 반품되는 일도 있었다는 일화가 당시 시각적 반응을 함축한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어느 순간 ‘그렇기 때문에 좋다’는 열광적 호응의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시점이 참 묘하다. 1961년 초 발표된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다 여러 달이 지난 그해 하반기에 히트했는데, 그 한복판에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란 바로 박정희 군사 쿠데타였다. 상큼하고 분방한 이 곡이 ‘4.19 이후’가 아니라 ‘5.16 이후’에 히트한 사실, 그 과정에서 새 시대의 기풍을 불어넣으려는 정권과 방송의 이해관계가 이 곡의 히트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얄궂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는 ‘해방 후 최대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프랑스 가수 이베트 지로, 일본 가수 하마무라 미치코 등의 목소리로 녹음되었으며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히트하며 한류의 선구적 사례가 되었다.

 

음반 <손석우 멜로듸>가 찍어내기 무섭게 팔려나갔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음반 커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작곡가 손석우(1920년 생)다. 그의 경력은 5주 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으므로 생략할 테니 궁금한 분들은 인터넷을 뒤져보길 바란다.

 

단, 1950년대 말 당시 분신처럼 신뢰하던 손시향의 목소리로 발표한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은 언급해야겠다. 예사로운 소재를 범상치 않게 형상화한 가사와 뛰어난 악곡으로 갈무리한 독특한 곡들이었다.

 

 

물론 손석우가 가요계의 거목이 된 건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계기였다. 최희준(‘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김상희(‘처음 데이트’), 블루 벨스(‘열두 냥 짜리 인생’)를 데뷔시켜 인기 가수로 견인한 것도 손석우였다.

 

이춘희, 김성옥, 차도균, 송창식 등은 손석우의 손을 거쳐 솔로 데뷔한 가수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또한 오늘날의 인디 레이블 격인 뷔너스 레코드를 설립하여 음반의 자주제작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뷔너스 레코드의 첫 음반이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담긴 <손석우 멜로듸>였고, 이 음반이 1960년대가 LP 시대가 될 것임을 예시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손석우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파란을 일으킨 이후, 엄토미, 이봉조, 송민영, 김호길 등 악단장 겸 작곡가와 현미, 패티 김, 윤복희 등 미8군 무대 출신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여 새로운 물결을 이루었다.

 

1960년대 ‘팝 스타일의 가요’의 시원에 손석우와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있는 것이다. 손석우를 현대적인 국산 대중음악의 작가, 즉 한국 팝 최초의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런 의미에서다.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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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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