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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17 한국팝의 사건사고 - 13. ‘일반 무대’ 가 원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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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팝의 사건사고 - 13. ‘일반 무대’ 가 원하는 음악

⑬극장 쇼의 스타들과 ‘슬로우 록’ 히트가요들

 

소시적 기타 학원에서 기타를 배워본 사람은 ‘슬로우 록’이라는 용어에 익숙할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양희은), ‘사랑해’(라나에로스포), ‘당신도 울고 있네요’(김종찬), ‘친구여’(조용필) 등 1970~80년대의 주옥같은 히트곡들이 슬로우 록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악보로 설명한다면, 한 박자를 3등분해 네 번 반복되는 패턴, 악보로 설명하면 셋잇단음표 네 개가 한 마디를 구성하는 패턴이고, 1박보다는 2박에, 3박보다는 4박에, 즉 백비트에 강세를 두는 센스도 발휘하면 더 좋겠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 주옥 같은 히트곡들도 바로 이 12비트의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리듬 패턴의 기원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기타 교본을 뒤져 보면 악보와 더불어 이런 설명까지 등장하고 있다.

 

“본래는 록카 발라드(Rock'a Ballad)라는 리듬으로 최근의 히트곡에 이 리듬이 급증하고 있다. 천천히 흐르는 듯한 감정 표현에 매우 적합한 리듬 형태이다”. 옳거니 ‘록’과 무언가 관련이 있기는 하되 ‘천천히 흐르는’ 감정을 담은 ‘발라드’에 어울리는 리듬이렸다.

 

템포가 더 느리면 ‘부루스’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이 용어가 정확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기로 하자. “한국에서는 모든 게 ‘짝퉁’이고 ‘야메’”라고 냉소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위에서 ‘최근의 히트곡’이라고 말한 곡들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1960년대에 현미의 ‘떠날 때는 말없이’(유호 작사·이봉조 작곡), 남진의 ‘미워도 다시 한번’(김진경 작사·이재현 작곡), 정원의 ‘허무한 마음’(전우 작사·오민우 작곡), 쟈니 리의 ‘뜨거운 안녕’(백영진 작사·서영은 작곡), 황규현의 ’애원’(박진하 작사·작곡)을 비롯해 그 외에도 더 많겠지만 일단 이 정도로 좁혀 보자.

 

아마도 이 곡을 들으면 선술집에서 젓가락을 두들기면서 목이 터져라 열창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현미와 황규현을 제외한다면, 위 가수들의 경력은 미 8군 쇼 무대에서 경력을 쌓은 뒤 방송 무대로 진출하는 ‘팝 싱거(당시 표기법이다)’의 표준적인 경력과는 조금 다르다.

 

남진은 ‘트로트 가수’의 이미지가 지배적이므로 일단 오늘 논의에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물론 당시의 연예인이라면 미 8군 무대와 연관된 클럽에 얼굴을 몇 번 들이미는 일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 무대를 본다면 미8군 무대나 방송무대 같은 특별 무대가 아니라 ‘일반 무대’라고 불리는 곳이었고, 일반 무대란 ’극장 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극장 쇼를 ‘뽕짝과 신파극의 버라이어티 쇼’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1960년대 중반이 되면 극장 쇼에도 모종의 변화가 발생하고, 이런 변화는 ‘변두리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서울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노벨극장(신설동), 신영극장(신촌), 봉래극장(마포), 화양극장(서대문) 등이 ‘변두리 극장’들인데, 극장 쇼의 분위기는 “쇼가 시작되면서 트위스트 노래가 나오면 앞에 앉아 있던 10대들의 몸은 가만있지 않는다.

 

일어나서 몸을 비비 틀고 심하면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같이 합세하는 법석을 떤다”는 당시 한 잡지의 기사(<명랑>, 1968/4.)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기사가 <10대악()을 자극하는 악류()>라는 살벌한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이 크게 달랐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슬로우 록’이 무엇인지 그 실체는 명확해진다. 정원, 쟈니 리 같은 극장 쇼 스타들의 주된 레퍼토리는 트위스트나 로큰롤 같은 본격 댄스 음악이었지만, 깁의 대중적 히트곡은 ‘슬로우 록’이나 ‘로카 발라드’였던 셈이고, 이 곡들이 깁의 대표곡으로 ‘가요반세기’ 등의 책자에 남아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는 ‘헤비 메탈’이나 ‘얼터너티브 록’을 하고 싶어도 인기가수가 되어 히트곡을 내려면 ‘록 발라드’를 불러야 하는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정원과 쟈니 리는 노래도 노래지만 <청춘대학>이나 <폭발 1초전> 같은 ‘B급’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기도 했다.

 

태동기의 국산 B급 문화에 대한 논의가 매우 적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아, 그런데 ‘트위스트 가요’도 있지 않냐고? 트위스트가 가요가 되는 길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알아 보자.

 

신현준/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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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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