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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28 한국팝의 사건사고 - 27. 그룹사운드 오빠들 미국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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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팝의 사건사고 - 27. 그룹사운드 오빠들 미국으로 간 까닭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고고장’에 간 남녀 고딩들이 서로 ‘부루스’를 출 때 나오는 노래가 하나 있다. “빠빠빠빠빠 빠”라는 중창으로 시작하고 “그대 슬픈 밤에는 등불을 켜요”라는 구성진 노래와 더불어 색소폰이 울어 예는 사운드다. 

 

이때 테이블에서 ‘작업’에 들어가려는 여자 고딩이 말한다. “이 노래 좋지? 난 가요는 잘 안 듣는데 이 노래는 좋더라”. ‘등불’이라는 제목의 이 곡의 원 주인공은 ‘영 사운드’이고, 작곡가는 그룹의 리더였던 안치행이다.
 

(일종의 히트곡 모음집인 <오아시스 팝 페스티벌 Vol.1>(1973)의 커버. 제목과 달리 이 음반에는 ‘영 사운드’, ‘히 식스’, ‘4월과 5월’, ‘빅 화이브’(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등의 포크송과 그룹 사운드 곡이 담겨 있다. -->)

 

그렇다면 팝송을 좋아하면서 가요는 시시하게 치부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던 가요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 기획에서도 몇 차례 소개한 ‘포크송’이고(‘팝’에 가까운 형식의 음악을 왜 굳이 ‘포크’라고 불렀는가는 학술대회 같은 데서 따지도록 하자), 다른 하나는 ‘그룹 사운드’다.

 

그런데 국산 포크송의 경우 중간계급 대학생으로부터 사랑 받았던 반면, 그룹 사운드의 경우는 다소 모호하다. 지난 주에 보았듯이 그룹 사운드란 기본적으로 ‘미8군 무대’를 거쳐 ‘고고 클럽’으로 자리를 옮겨서 춤추는 군상들이 춤추기 좋은 사운드를 내뿜던 존재였고, 그래서 ‘가요계’와는 거리가 있던 존재들이었다.

 

‘뷰티풀 선데이’, ‘프라우드 매리’, ‘에빌 웨이스’ 등 연주하기도 쉽고 춤추기도 좋은 ‘히트 팝스’들이 그룹 사운드들이 싫든 좋든 연주해야 했던 곡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5년 이전의 그룹 사운드는 몇 개의 히트곡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키 보이스’의 ‘바닷가의 추억’과 ‘해변으로 가요’, ‘히 화이브/히 식스’의 ‘초원’, ‘초원의 빛’, ‘당신은 몰라’, ‘키 브라더스’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노래하는 곳에’ 등이 ‘키(Key)’라는 글자와 연관된 복잡한 계보의 그룹들이 만들어낸 히트곡들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외국 곡의 번안곡이고, 다른 일부는 직업적 작곡가가 만든 곡들이고, 또 다른 일부는 그룹 자신의 자작곡들이지만 설명이 복잡해지니 생략한다.

 

이들 1세대 그룹 사운드 이후의 그룹들도 히트곡을 남겼다. 앞서 언급한 ‘영 사운드’의 ‘등불’과 ‘달무리’, ‘드래곤스’의 ‘떨어진 잎새’, ‘템페스트’의 ‘파도’와 ‘내 곁에 있어 주’, ‘트리퍼스’의 ‘옛님’, ‘데블스’의 ‘그리운 건 너’ 등등. 대략 1972년부터 1974년 사이에 음반으로 발표되고 방송가와 살롱가에서 히트한 곡들이다.

 

 

그렇다면 ‘야간업소’나 ‘밤무대’가 그룹 사운드의 일상적 음악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고는 해도, 한국의 그룹 사운드들은 서서히 모방과 번안을 벗어나 응용과 창작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그렇게 순순히 해석하기 전에 몇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그룹 사운드 히트곡’들을 ‘한국 록의 고전’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기에는 무언가 아쉬운 점이 있다는 말이다. 이 곡들이 그룹의 자작곡인 경우도 있지만 다른 작곡가의 곡인 경우에는 평가가 더욱 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단지 청자의 평가뿐만 아니라 음악을 직접 연주한 본인들의 평가인 경우도 있다. 당대의 멋쟁이 오빠들과 인터뷰를 해 보면 ‘자신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이라기보다는 ‘그저 이런저런 필요에 의해 만든 음악’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참 이상하다. 당시 이들이 남긴 음원들 가운데 ‘팝송’을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면 경쾌하게 달리고 날아다니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가요’를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면 무언가 침울하고 갑갑하다.

 

왜 그랬을까. 10월 유신과 긴급조치 같은 정치적 억압 때문에? 아니면 밤무대에서 젊음을 탕진해야 했던 갑갑함 때문에? 당사자가 아니라면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들 그룹 사운드 오빠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재미동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김홍탁(히 식스), 김선(바보스), 조영조(키 보이스), 심형섭(휘닉스), 박명길(드래곤스), 안건마(안건마 악단) 등이 1970년대가 지나기 전 도미(渡美)를 택했다. 이런 ‘이민의 역사’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영화 <헤드윅>에서 미국의 기지촌을 찾아간 헤드윅이 그곳에서 한국계 여성 멤버들과 연주하던 장면이 새삼스러워진다. 그리고 4반세기의 세월이 더 지난 지금 이들 이민자의 자식뻘되는 아이들은 팝송보다 가요를 더 좋아하고 가끔은 가수가 되기 위해 귀국도 한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바보스럽게도 필자가 독자에게 묻게 된다.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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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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