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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23 한국팝의 사건사고 - 20. 록이 ‘비운의 음악’ 이라고? 무슨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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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팝의 사건사고 - 20. 록이 ‘비운의 음악’ 이라고? 무슨 말씀!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20) 잊혀진 록의 시대

 

 

1975년 이후 록 음악을 접하기 시작한 애호가들 사이에는 ‘한국에서 록은 안돼’라는 자조와 패배의식이 깊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록 음악이 주류에서 성공을 거둔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사랑과 평화’, ‘산울림’, ‘송골매’, ‘들국화’, ‘시나위’, ‘넥스트’, ‘크라잉 넛’, ‘윤도현 밴드’ 등이 시대를 풍미하며 활약해왔고 솔로 가수도 록 스타일의 곡들로 인기를 얻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록 마니아 집단 안에서는 한국에서 록이 비운의 음악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다. 영미권에 대한 높은 동경과 깊은 열등감으로 이뤄진 패배주의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자중과 자애 그리고 자긍심을 가질 만한 역사를 정리하지 못한 탓도 있다. 역사는 커녕 기초적인 데이터베이스의 보존과 정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유실과 망각을 방임해온 게 사실이다.

 

그나마 몇 해 전부터 지나간 한국 팝의 역사에 대한 반추와 복원, 재평가의 움직임이 각개전투처럼 이어져 뒤늦게나마 상황은 조금씩 호전되고 있지만 말이다.

 

이처럼 무겁게 말문을 연 까닭은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한국에서도 ‘록의 시대’로 불릴 만한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이 시리즈의 최근 연재분에서 언급했듯이 그때는 다름 아니라 1969년부터 시작되어 1975년에서 멈춘다.

 

1969년 5월 ‘제1회 전국 보컬 그룹 경연대회’에서 촉발된 ‘그룹 사운드 센세이션’은 1971년께까지 엄청난 열기를 내뿜었고 솔, 포크와 삼두마차를 이루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고고 붐’의 주역이 되며 1975년까지 청년 대중음악의 한 축을 이루었다. 포크와 고고 붐에 대해서는 뒤에 별도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제1회 전국 보컬 그룹 경연대회’의 여파는 컸다. 이후 서울 시민회관에서는 유사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가 수시로 열렸음은 물론이다. 미도파 살롱, 오비스 캐빈, 라스베가스 등 명동·소공동·무교동·종로 일대의 생음악 살롱에는 이들 그룹 사운드가 상시로 무대에 올라 장발에 판탈롱과 미니 스커트로 맵시를 낸 ‘명동족’들의 광란을 이끌어냈다.

 

또 그룹 사운드는 지상파 텔레비전에도 자주 등장했는데, 동양방송(TBC)의 ‘원 투 쓰리 고’, ‘쇼쇼쇼’ 같은 프로그램에 붙박이처럼 출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당시의 생생한 경험에 대해서는 뒷날 누구나 알 만한 뮤지션이 된 한 음악인의 회고로 대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음악이 시작되면 해피 스모크의 연기가 피어오르고(당신엔 대마초 규제가 없었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갈래머리 여학생들 역시 흥청거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각 밴드가 번갈아 나오면서 ‘지미 헨드릭스’, ‘산타나’, ‘비틀스’, ‘애니멀스’, ‘시시아르(CCR)’ 등 우리가 흔히 라디오에서 듣던 서양의 팝송들을 멋들어지게 연주했다.

 

그 형들은 정말 한마디로 멋쟁이들이었다. 긴 머리에 나팔바지, 그리고 히피 마크와 부츠…. 이런 패션이 당시 그룹들의 트레이드마크였다.”(다음 카페 ‘그룹 들국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http://cafe.daum.net/march)에서 발췌)

 

 

위 글을 쓴 인물은 ‘들국화’의 베이스 연주자로 유명한 최성원으로 그 역시 ‘멋진 형들에 열광하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던 것이다.

 

환각적인 사이키 조명 아래 이들 그룹 사운드는 ‘레어 어스’의 ‘겟 레디’, ‘스테픈울프’의 ‘본 투 비 와일드’, ‘바닐라 퍼지’의 ‘유 킵 미 행잉 온’ 등을 즐겨 연주했다.

 

특히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인-어-가다-다-비다’는 공연의 정점을 장식하는 필수 레퍼토리였다. 이들이 팝송 커버만 했던 것은 아니다. 비록 그 수는 많지 않았지만 창작곡을 섞어 독집을 내기 시작했고 창작곡의 비중은 곧 커버곡을 압도해갔다.

 

그렇게 레코딩으로 남은 ‘키 보이스’의 ‘바닷가의 추억’, ‘해변으로 가요’(일명 ‘해변 시리즈’), ‘님 떠나 갈 시간’, 그리고 히 화이브/히 식스의 ‘초원’, ‘초원의 사랑’, ‘초원의 빛’(일명 ‘초원 시리즈’),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 ‘당신은 몰라’, ‘키 브라더스’의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곡들은 당대의 히트곡이자 지금도 고전으로 남아 있다.

 

 

이 시기 ‘키 보이스와 히 화이브/히 식스’는 ‘남진과 나훈아’처럼 불꽃튀는 라이벌 관계를 이루며 살롱가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주역이었다. 물론 1970년을 전후한 때에 ‘솔 & 사이키’만 인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처럼 남은 포크 음악이 있다. 이건 다음 회에.

 

 

 

이용우/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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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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