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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팝의 사건사고 - 18. 「키 보이스」 시작으로 「 ∼스」 전성시대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18) 1969년 그룹 사운드 붐

 

1969년 5월17일. 광화문 앞 세종로의 한쪽 블록에는 젊은이들의 대열이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장소는 서울 시민회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앞이었다.

 

그 날만이 아니라 나흘간이나 동일한 진풍경이 반복되었다. 3000석 규모의 시민회관은 하루 네 차례 물갈이하며 연인원 4만여명의 청중으로 만석을 이뤘다. 암표소동도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대체 어떤 행사였기에 그런 진풍경이 연출된 것일까. 행사의 타이틀은 ‘5·16 기념 플레이보이배 쟁탈 전국 보컬그룹 경연대회’였다.

 

‘5·16 기념’이란 문구는 시기적으로 그때가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의 한복판이었음을 감안하면 관행의 결과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플레이보이란 명칭은 행사를 주최한 플레이보이 프로덕션(단장 이순우)에서 나온 것이다.

 

 

이 경연대회는 총 17팀의 출연진이 출전해 불꽃 튀는 연주를 뽐내며 자웅을 겨뤘다. 경연대회의 최고상은 ‘키 보이스’, 우수상은 ‘히 화이브’, 구성상은 ‘가이스 앤 돌스’, 가수상은 이필원(타이거스), 연주상은 조영조(키 보이스)가 차지했다.

 

이들을 포함한 출전팀 거의 대부분은 미8군 무대 출신이었다. 경연대회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하다면 당시를 경험한 이들에게 물어 보라. 공통적으로 ‘정말 대단했지!’라는 감회 깊은 감탄문이 즉각 나올 것이다.

 

그리고는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에 대한 정황 설명과 함께 ‘키 보이스’는 어땠고 ‘히 화이브’는 어땠고 하는 생생하고 장황한 얘기들이 무용담처럼 뒤를 이을 것이다.

 

 

당시 취재 기사의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1류 가수, 코미디언을 동원해도 텅텅 비기 일쑤인 시민회관이 암표소동을 벌일 만큼 붐볐으니 하나의 이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팀이 바뀌고 레퍼터리가 바뀔 때마다 회관이 떠나가라 박수를 보냈다. 무대에서 연주,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청중은 이에 따라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무대와 관객석이 한데 어울리는 흥겨움. …보컬 사운드의 특징인 엘레기(전기 기타)의 다이내믹한 볼륨과 유니 송의 창법, 생동하는 스테이지 매너가 청중을 매혹시켰다.”(<선데이서울>, 1969년 6월1일치)

 

지지난 주에 1964년 ‘키 보이스’와 ‘애드 훠’의 ‘일반 무대’ 데뷔가 절반의 성공에도 못 미쳤다고 얘기한 바 있는데, 그로부터 5년만에 상황은 180도 달라진 것이다.

 

그 사이, 그러니까 ‘키 보이스’와 ‘애드 훠’를 신호탄으로 ‘한국의 비틀스’들이 뒤를 이어 등장하여 분투하던 시기가 징검다리가 되었다. ‘바보스’, ‘김치스’, ‘샤우터스’, ‘다크 아이스’, ‘포 가이스’, ‘화이브 휭거스’ 등이 미8군 무대를 근거지로 맹활약했다.

 

하청일이 당시 ‘샤우터스’ 멤버로 연주생활을 했다는 사실, 조용필이 1960년대 후반 ‘화이브 휭거스’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유명 음악인의 그룹 사운드 시절을 증언하는 극히 일부의 예에 불과하다.

 

1960년대 중반을 지나며, 베트남전으로 주한미군의 수가 줄어들면서 미군 쇼 무대가 축소되었다. 반면 미도파 살롱을 비롯한 생음악 살롱 등 그룹이 설만한 일반 무대는 점차 늘어났다.

 

이에 따라 미8군 무대 출신 그룹들이 한국 대중을 상대로 문을 두드리는 일이 가속화했다. 팝송을 즐기는 열혈 청년의 비중이 점차 늘어갔고 연주를 하고자 직접 악기를 잡는 이들도 점점 늘어갔음은 물론이다.

 

 

1969년 솔 열풍을 일으킨 ‘펄 시스터스’와 김추자의 대박 행진 뒤에도 그룹 사운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신중현과 그의 그룹 ‘덩키스’가 주인공이다.

 

그해를 뒤흔든 펄 시스터스의 ‘커피 한잔’과 ‘님아’, 김추자의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김상희의 ‘어떻게 해’ 등은 신중현이 작사, 작곡, 편곡을 하고 덩키스가 연주한 곡들이었다.

 

이 무렵 그룹 사운드들은 종래의 4인조 기본 편성(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에 오르간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아이언 버터플라이’의 ‘In-A-Gadda-Vida’가 태평양 넘어 이 곳까지 환각적인 사이키델릭 열기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자세한 얘기는 뒤에 하자. 단, 솔로 가수에 의한 열창형의 가창, 그룹 사운드에 의한 사이키델릭 풍 연주가 뒤섞인 새로운 감성의 곡들이 청년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는 점은 기억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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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화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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